계방산의 겨울과 속사 "계방산은 왜 유명하지 않았을까?"
내 물음에 친구는 대답한다.
"첫째는 워낙 깊은 곳에 있던 산인데다 설악 만큼 금방 눈에 띄는 암석미가 없었고, 둘째는 바로
옆에 오대산이라는 큰 산이 있어 가려졌으며, 셋째는 품고 있는 유적이나 사찰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난 계방을 좋아해" …
휴전선 남쪽에서는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 계방산, 네번째까지 높은 산들, 즉 한라산, 지리산, 설
악산, 덕유산의 명성을 생각해 보면 계방산도 분명 유명한 산이어야 할텐데, 등산을 좋아하거나 관
심이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잘 모르는 산이 계방산이다. 인근의 오대산이 신라 시대부터 강릉의 권
역 내에서 주목받아온 것에 비해 상당한 차별 대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계방산이 품고
있는 대한동, 소한동, 을수골, 조항천, 속사천 등의 골짜기는 얼마 전까지 오지의 수식어를 덮어쓰
고 있었고, 동쪽의 오대산 일대와 서쪽의 봉평 일대가 한창 잘 알려지고 있을 때도 이승복 사건 유
적지 정도만 유명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반공의 이념과 냉전체제가 한발 물러서면서 이승복 유적지
는 오히려 지나간 어두운 시대의 유산으로 외면받고 있다.
옛날부터 유명한, 오래된 산일수록 불교적, 유교적, 혹은 도교적, 풍수적색채를 띠고 있다. 종교
적, 전통적 관념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계방산은 그만큼 역사의 오지에서 숨쉬고 있었기에 자연의 모
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오죽하면 옛날의 전통 사찰은 물론이고 최근의 스키장까지 비켜갔을까.
이 산의 봄 철쭉, 여름 녹음과 시원한 계곡, 가을단풍도 좋지만 가장 깨끗한 계방의 모습은 역시
겨울의 계방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끗한 계방의 겨울을 단 시간 내에 맛본다면 역시 운두령에서 정
상에 오르는 3.5km의 트래킹 코스를 활용하도록 한다. 올겨울처럼 눈이 많이 내린 경우는 물론이고
대개 겨울이면 거의 눈을 머리에 이고 사는 계방은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를 동안 내내 시선과 발
길을 잡아 둔다. |
하지만 높이 1089m의 높고 험한 운두령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눈이 쌓여 있
을 경우 1492m 봉에 오를 때까지 가파른 눈길이 곳곳에 있어 조심해야 하며, 특히 1492 봉 바로 아
래의 약 150m 구간은 경사가 심한 비탈이라 오를 때는 물론 내려갈 때에도 상당한 주의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1492 봉 부터는 대체로 평탄한 능선을 이루고 있어 좀더 여유롭게 주변을 감상하며 정상
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이 구간은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내내 전망이 좋고 곳 곳에 위치한 소나무와
주목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렇게 운두령에서 정상까지는 약 2시간, 서두르면 1시간30분
만에 오를 수 있는데, 힘들여 오른 보람이 느껴질 만큼 설경이 아름답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오대
산정상과 그 산줄기들, 서쪽으로 뻗어나간 차령의 줄기, 회령봉과 태기산, 휘닉스파크, 남쪽으로는
용평스키장과 발왕산, 백석산, 저멀리 가리왕산, 북으로는 약수산, 점봉산을 거쳐 설악까지 전망되
며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온 산과 온 세상이 눈꽃이며 하이얀 천국이다. 오르내리는 사람도 많지
않은, 이만한 눈꽃산행이 또 있을까 싶다. 진정 아름다운 겨울의 계방이다. |
이러한 오염되지 않은 계방산 중턱과 아래자락에는 길가
곳곳에 송어회 집이 자리한다. 평창군은 송어 양식을 처음
으로 시작한곳이며,송어회를 처음으로 제공한 동네이기 때
문에, 오염되지 않은 차가운 속사천과 계방산 일대에 송어
회집이 많이 들어서 있고, 송어회 맛이 뛰어난것도 우연은
아니다.등산을 마친후에 이들 집에 들러 송어회 한 접시와
고소한 매운탕을 먹고 나면 온 몸의 피로가 풀리며 늘어질
정도로 좋다. 송어회는 신선도가 생명이라 내온 뒤에 빨리
먹어야 하는데,신선함을 오랫동안 유지하기위해 차가운 보
통은 일부러 얼린 돌판 위에 내오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이 일대의 환경 보존에 대한 노력이 여기저기 보이
는데, 운두령 송어회 집의 화장실 문구,"저희는 깨끗한 냇물을 유지하기 위해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
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이 문장을 통해 계방산 아랫자락의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의 일단을 엿
볼 수 있다. |
운두령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며 곳곳에 보이는 송어
회집들을 거쳐가면 이승복 기념관이 나온다. 1968년 "나는 공
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무장공비에게 잔인한 죽음을 당했다
는 이승복은 세계적인 냉전체제와 남북대치상태에서 끊임없이
반공이념을 강화하는 상징적사건의 역할을 했다. 증오와 분노
를 앞세운 어른들의 치열한 싸움에 희생당한 아이, 이념이 뭔
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앞에서 반공과
안보 의식을 다지기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주
고싶다.
소박한 꿈이었을지언정 채 자신의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갖
지 못한 소년을 죽였던 사람들과 그의 죽음을 특정한 이념의
강화 수단으로 삼았던 사람들 , 그들 모두에게 순수한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와 그의 죽음앞에서 화해하고 다시는 그러한 아
픔이 재현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랫동안 원수로 지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희생으
로 코페르니쿠스적인 화합을 이루어냈던 셰익스피어 희곡의 두집안, 그 집안들처럼 한 어린이의 죽
음을 재해석하며 화해하는것은 연극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 대립과 증오의 칼날 위에 선 냉전이
무너졌는데도 이승복의 사건이 실제사실이니 아니니 하는 근래의 논쟁을 떠올리면 답답하기조차 하
다. 사실여부가 무어 그리 중요한가.
사실 여부를 떠난 그 당시의 의미와 현재 우리의 의미부여가 중요한 것을...
오대산 옆에서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조용한 침묵을 지키며 순수성을 유지해온 계방산, 겨울이면
하얗게 덮인 계방산은 여전히 말없이 품안의 모든 골짜기와 나무를 비롯한 동 식물, 그리고 오염되
지 않은 생태계를 포용하고 있다. 계방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아름다운 눈꽃들에서 이러한 순수성과
포용력을 인간이 배울 날은 언제일까.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속사 IC에서 나와 북쪽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이승복 기념관을 거쳐 운두령에
이른다. 운두령에는 주차 공간이 있으므로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원주, 강릉방면에서 시외버스로 진부에 간 다음, 진부에서 내면행(하루 8회) 버스를 이
용, 이승복기념관, 운두령 등에서 하차한다.
▲숙박 및 먹거리
운두령 아래쪽으로 계방산장(033-333-5600, 이하 지역번호 033), 산장민박(333-5555)등의 시설과
속사리에 속사장모텔(333-3788) 등이 있으며, 여관, 호텔 등의 숙박시설이 풍부한 진부에서 숙박을
하며 오가도 좋다.
먹거리로는 송어회를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속사에서 운두령까지는 먹을 만한 송어회집들이 많다.
운두령횟집(332-1943), 계방산쉼터(333-7775), 용골송어회(332-1115), 선비촌(332-3535)등 여러 집
들에서 냉동된 돌판 위에 나오는 싱싱한 송어회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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