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여행
그 간간하고 꼬들꼬들함이여!
간다라 양식의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전경 |
영광굴비는 예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올렸던 궁중 진상품. 이렇듯 귀하디귀한 굴비가 제 이름을 얻게 된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국사책을 달달 외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이자겸이 고려 인종 때 영광으로 유배되었는데 왕에게 굴비를 진상하면서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 는 뜻으로 굴비(屈非)라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찌됐던 굴비의 대표주자인 영광 굴비는 추자도나 흑산도 해역을 거쳐 칠산바다 로 외유하는 신선한 참조기가 제철을 만나 천일염으로 염장한 뒤 법성포의 바닷바람으로 말리는 건조의 과정을 거치며 ‘명품’ 으로 거듭나는 게 된다. |
영광굴비의 집산지 법성포굴비거리(좌)와 신기한 형상의 법성포구(우) |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히는 굴비와 잘 차려진 남도의 음식들 |
굴비정식은 4인 기준에 60000만원 정도. 주 메뉴인 굴비의 맛도 그만이지만, 상을 가득 채우는 반찬 가짓수에 흠짓 놀란다. 간장게장, 생선구이, 젓갈, 김치 나물무침, 매운탕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좔~좔 흐를 맛깔스런 남도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온다. 숯불에 구워 껍질을 바삭바삭하게 익힌 굴비 먼저 냉큼 집는다.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히는데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굴비맛이구나’ 싶다. 확실히 시장에서 가짜옷을 입고 영광굴비 행세를 하는 여타의 굴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살을 곱게 사악 발라내고 나면 상에 남는 건 가시와 내장 뿐 버릴 것이 없다. 굴비에 밥 한 그릇 비우고도 모자라 체면불구하고 또 한 그릇을 냉큼 먹어 버릴 만큼 이런 밥도둑이 세상에 없다. |
인도의 승려가 불교를 전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은 법성포 불교최초도래지 |
칠산바다의 물길(좌)과 멋지게 꾸며진 데크(우) |
백수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 가운데 9번째의 영광을 차지했다 |
해안드라이브를 즐기다보면 아래로 꽤 익숙한 장면을 보게 되는데 바로 영화 ‘마파도’ 의 촬영지인 동백마을. 도로 바로 아래에 집이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기에 차를 천천히 모는 것이 좋다. 여타의 세트장처럼 번지르 르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다섯 할머니의 집들이 영화 속 그대로 남아 있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마을로 내려가 해안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백수해안도로를 찾는다면 낮보다는 해질 녘을 권하고 싶다. 백수 해안도로의 일몰은 서해안의 대표적 명물. 해가 바다 속으로 잠행하는 환상적인 바다풍경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바쁜 걸음을 잠시 접고 붉디붉은 칠산 앞바다에 답답했던 마음을 실어 보내 보자. |
법성포에 들렸다면 당연히 불갑사를 들려야 한다. 불갑산 기슭에 위치한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년)에 인 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고도 하고 백제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 하였다고 하는 등 창건 시기나 창건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오히려 이런 것들 때문에 불갑사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각설하고, 불갑사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인적이 드 물어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들른 사람에게는 ‘보석’ 과 같은 은 곳이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 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있는데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사천왕상에서 1987년 월인 석보 등 귀중한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던 것.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 로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 짝 문을 연화문과 국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 칸에는 소슬 빗살무늬로 처리하 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불갑사 안에는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절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 무 군락 등이 있다. → 불갑사 자세히 보기 스쳐가는 나무 한 그루, 기와지붕 하나에도 존귀함이 가득하니… |
지금 절은 불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한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백제 최초의 절을 감상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스쳐가는 나무 하나 기와지붕 하나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없을 만큼의 존귀함이 가득하다. 한편 불갑사를 품고 있는 불갑산은 국내 최대 상사화군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산불이 번지듯 진초록 숲을 발갛게 물들이는 꽃무릇으로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불갑산 정상으로 올라 탁 트인 함평, 나주평야를 내려다보거나 서해 칠산 앞 바다에 찾아드는 낙조를 감상하며 영광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