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낭자 2008. 3. 29. 08:57
굴비두릅처럼 엮여진 천의 얼굴 영광,
                          그 간간하고 꼬들꼬들함이여!




                       간다라 양식의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전경

명절선물의 부동의 ‘챔피언’ 으로 한국에서 귀하게 대접받더니 최근에는 머나먼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없어서 못 판다” 고 할 정도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영광굴비. 이쯤되면 왜 자린고비가 그 맛있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군침만 삼켰는지 알 법도 하다. 우스갯소리지만 돌아앉은 시앗이 다시 오고 송장이 된 시어미가 벌떡 일어설 정도로 그 맛이 기가 막히다는 영광굴비는 그 옛날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기 힘들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님들에게는 ‘꿈의 반찬’ 이 아니었던가. 황금으로 칠해진 것도 아닐 터인데 이렇듯 비싼 값으로 식탁의 수준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굴비, 허나 그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만큼은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광에는 굴비말고도, 그 굴비를 더욱 맛깔나게 만드 신비한 법성포구가, 백수해안도로라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불갑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이 영광을 더욱 영광스럽게 만들어주는 풍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코끝이 얼얼해지는 초겨울, 추위만큼 움추려드는 여심(旅心)의 허리띠를 살짝 졸라매고, 영광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자린고비도 탄복한 천하제일의 맛, 영광굴비를 모른다면 옳지 않아
 


영광법성포굴비

영광굴비는 예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올렸던 궁중 진상품. 이렇듯 귀하디귀한 굴비가 제 이름을 얻게 된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국사책을 달달 외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이자겸이 고려 인종 때 영광으로 유배되었는데 왕에게 굴비를 진상하면서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 는 뜻으로 굴비(屈非)라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찌됐던 굴비의 대표주자인 영광 굴비는 추자도나 흑산도 해역을 거쳐 칠산바다 로 외유하는 신선한 참조기가 제철을 만나 천일염으로 염장한 뒤 법성포의 바닷바람으로 말리는 건조의 과정을 거치며 ‘명품’ 으로 거듭나는 게 된다.


                              영광굴비의 집산지 법성포굴비거리(좌)와 신기한 형상의 법성포구(우)

영광굴비는 정확히 말해 법성포(法性浦)굴비.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시켰다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첫 발을 내딛고 불갑사까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 또한 법성포.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불교적인 뉘앙스 때문인지 법성포구의 풍경 또한 다른 포구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포구가 바다에 가까이 붙은 것과는 다르게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뻘이 나오고 물이 얕아지는 보기 드문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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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맛에 한번, 반찬 수에 또 한번 놀라니 세상에 이런 밥도둑이 또 있을까?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히는 굴비와 잘 차려진 남도의 음식들

과연 ‘굴비명산지’ 답게 법성포구는 평일 한낮에도 전국각지의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줄을 잇는다. 굴비거리에는 300여 곳이 넘는 굴비상점들과 굴비정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굴비를 엮어서 널어놓은 모습도 굴비거리의 익숙한 풍경.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요, 음식이 좋으면 아무리 힘든 여행길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터. 허나 법성포구는 굴비를 직접 파는 전문점은 많지만 실로 굴비정식을 다루는 집은 몇 있지 않다. 그래서 막상 굴비를 먹으려 식당을 찾는데만 해도 시간이 걸린다. 설사 찾았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4인 한상 기준으로만 파는 곳도 있으니 사전정보가 없다면 미리 영광군청에 문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반찬 가짓수가 30여개가 넘는 굴비정식

굴비정식은 4인 기준에 60000만원 정도. 주 메뉴인 굴비의 맛도 그만이지만, 상을 가득 채우는 반찬 가짓수에 흠짓 놀란다. 간장게장, 생선구이, 젓갈, 김치 나물무침, 매운탕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좔~좔 흐를 맛깔스런 남도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온다. 숯불에 구워 껍질을 바삭바삭하게 익힌 굴비 먼저 냉큼 집는다.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히는데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굴비맛이구나’ 싶다. 확실히 시장에서 가짜옷을 입고 영광굴비 행세를 하는 여타의 굴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살을 곱게 사악 발라내고 나면 상에 남는 건 가시와 내장 뿐 버릴 것이 없다. 굴비에 밥 한 그릇 비우고도 모자라 체면불구하고 또 한 그릇을 냉큼 먹어 버릴 만큼 이런 밥도둑이 세상에 없다.

법성포 좌우두에 세워진 불교성지,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인도의 승려가 불교를 전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은 법성포 불교최초도래지

영광의 별미인 굴비도 먹었으니 이제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에 충실해보자. 접어놓았던 영광의 관광 지도를 다시 펼치니 영광의 속살들이 하나둘 만져진다. 먼저 법성포에서 나와 2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간다라 양식의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만날 수 있다. 마치 인도에 온 것 같은 간다라풍의 입구부터가 특이하다. 오른쪽으로 보면 마라난타가 물길을 따라 들어왔던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정자와 함께 그 옆으로 넓은 데크가 만들어졌다.
 


                                       칠산바다의 물길(좌)과 멋지게 꾸며진 데크(우)

왼쪽으로는 마라난타상과 전시관, 유물관, 부용루, 팔각정, 만불전 등 불교 전래지를 알리는 기념물들이 서 있다. 특히 거대한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간다라유물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작은 야외 공원마냥 만들어져 있는 데크는 이상스레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마라난타가 배를 타고 들어왔을 물길을 바라보며 고요히 상념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백제 불교 최초도래지는 아직 미완성이다. 내년이면 불상 10000개를 모시는 법당인 만불전이 완공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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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싶어 안달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백수해안도로


                      백수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 가운데 9번째의 영광을 차지했다

백제불교도래지에서 나와 굽이굽이 뻗은 77번 국도를 타고 달려보자. 백수읍 백암리에서 법성포로 이어지는 총 16.5km 길이의 백수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 가운데 당당히 9번째 도로의 영광을 차지할 만큼 절경. 특히 도로의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 본 포구의 모습은 안동 하회마을의 그것처럼 물돌이동 형상인데다 물이 빠지면 끝이 안보일 정도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어디가 갯벌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또한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그 경계가 따로없이 죽 이어지는 특이한 풍경에 그 감동은 쉽게 가라않지 않는다. 절벽 아래로 얼굴을 내치는 형형색색의 바위들도 큰 매력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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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파도할머니들의 정겨움이 오롯이 남아있는 동백마을
 


영화 마파도 촬영지인 동백마을

해안드라이브를 즐기다보면 아래로 꽤 익숙한 장면을 보게 되는데 바로 영화 ‘마파도’ 의 촬영지인 동백마을. 도로 바로 아래에 집이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기에 차를 천천히 모는 것이 좋다. 여타의 세트장처럼 번지르 르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다섯 할머니의 집들이 영화 속 그대로 남아 있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마을로 내려가 해안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백수해안도로를 찾는다면 낮보다는 해질 녘을 권하고 싶다. 백수 해안도로의 일몰은 서해안의 대표적 명물. 해가 바다 속으로 잠행하는 환상적인 바다풍경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바쁜 걸음을 잠시 접고 붉디붉은 칠산 앞바다에 답답했던 마음을 실어 보내 보자.

백제불교 문화의 진원지, 숨겨진 사찰불갑사에 서서


                              늦가을, 단풍에 휩싸인 불갑산의 풍경과 대웅전 및 경내 모습

법성포에 들렸다면 당연히 불갑사를 들려야 한다. 불갑산 기슭에 위치한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년)에 인
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고도 하고 백제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
하였다고 하는 등 창건 시기나 창건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오히려 이런 것들 때문에 불갑사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각설하고, 불갑사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인적이 드
물어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들른 사람에게는 ‘보석’ 과 같은 은 곳이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
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있는데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사천왕상에서 1987년 월인
석보 등 귀중한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던 것.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
로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 짝 문을 연화문과 국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 칸에는 소슬 빗살무늬로 처리하
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불갑사 안에는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절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 무 군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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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나무 한 그루, 기와지붕 하나에도 존귀함이 가득하니…
 

계절을 거역하는 참식나무

지금 절은 불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한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백제 최초의 절을 감상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스쳐가는 나무 하나 기와지붕 하나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없을 만큼의 존귀함이 가득하다. 한편 불갑사를 품고 있는 불갑산은 국내 최대 상사화군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산불이 번지듯 진초록 숲을 발갛게 물들이는 꽃무릇으로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불갑산 정상으로 올라 탁 트인 함평, 나주평야를 내려다보거나 서해 칠산 앞 바다에 찾아드는 낙조를 감상하며 영광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

(여행 팁)

▶ 법성포 굴비거리 가는 길
1) 자가용 : * 서울(호남고속도로) → 정읍 I.C → 고창 → 영광 * 서울(서해안고속도로) → 영광 I.C(298km : 3시간 40분) * 광주 → 문장 → 영광 2) 대중교통 : 서울·안양·안산·성남·이천에서 고속버스가 운행되며 3∼4시간 소요된다.

▶ 굴비 맛있는 집
법성포 굴비거리에 있는 007식당(061-356-2216)과 일번지 식당(061-356-2268)이 유명하다. 굴비정식 4인 기준 60000원. 반찬 가짓수가 30여 개가 넘는다.

▶ 불갑사 가는 길
1) 자가용 * 서울→호남고속국도→장성IC→24번 국도(함평 방향)→문장리4거리(우회전)→22번 국도(영광 방향) → 삼학리3거리(좌회전)→불갑산 입구 3거리(좌회전)→불갑사
* 서울→서해안고속도로→영광I.C→영광 방향(23번 국도)→영광읍(22번 국도)→삼학리3거리 (좌회전)→ 불갑산 입구 3거리(좌회전)→불갑사 * 광주(22번 국도 영광 방향)→삼학리3거리(좌회전)→불갑산 입구 3거리(좌회전)→불갑사
2) 군내버스 영광시외버스 터미널(061-353-3360)에서 불갑사행 완행버스 이용 (20분 소요) 영광에서 함평 경유 목포행버스 이용, 불갑면에서 하차 후 불갑사까지 택시를 이용 가능 (3.4km 거리)